본인-대리인의 관계와 도덕적 해이
어떤 일을 본인이 직접 하기에는 능력이 없거나 혹은 시간이 없어 대리인을 선정해 그에게 일 처리를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요. 다시 말해서 대리 계약을 맺어 남에게 일을 대신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례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을 맡기는 사람을 본인, 그리고 일 처리를 부탁받은 사람을 대리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둘 사이에는 본인-대리인의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이 관계에서는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바로 도덕적 해이 문제입니다.
도덕적 해이의 의미
본인-대리인의 관계의 가장 좋은 예를 찾아본다면 주주와 전문경영인 사이를 들 수 있습니다. 주주들이 기업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이 기업을 직접 경영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데요. 기업 경영에 투입할 시간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능력이나 전문지식이 부족해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주는 전문 경영인에게 기업의 경영을 내맡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 밖에도 지주와 소작인, 소송 의뢰인과 변호사, 가수와 매니저의 사이 등에서 이와 비슷한 본인-대리인의 관계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을 위임받은 전문경영인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기업은 이윤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경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배당금도 많이 받고 주식 가격이 상승하는 혜택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 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윤보다는 매출액, 다시 말해 거래 규모가 더 커지는 것이 유리하게 됩니다. 경영자로서의 위신이나 영향력, 보수가 거래 규모에 비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주가 전문경영인의 모든 행동을 일일이 관찰하고 감시할 수만 있다면 전문경영인은 매출액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싶어도 쉽사리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실이 주주에게 알려지는 즉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주주가 전문경영인의 행동을 완벽하게 감시할 수는 없는데요. 대리인인 전문경영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를 아는 전문경영인은 자신의 이익을 쫓아 가능한 한 매출액을 크게 만드는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 보는 것처럼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을 쫓아 행동한 결과 본인의 이익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대리인의 행동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말하는데요. 다시 말해 도덕적 해이는 본인이 대리인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대리인이 자신의 이익을 쫓아 행동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모든 본인-대리인의 관계에서 나타날 소지가 있습니다. 이처럼 대리인이 본인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에 관한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를 본인-대리인의 문제라고 부릅니다.
보험시장에서의 도덕적 해이
앞에서 보험시장에서는 역선택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는데요. 보험시장에서는 역선택뿐 아니라 앞서 설명했던 도덕적 해이 현상도 매우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험에 드는 사람은 가입 당시 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암묵적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일단 가입한 다음에는 그 약속을 지킬 유인이 없어지는데요. 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에는 비용이 드는데 사고가 나도 어차피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그 노력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험 가입자가 사고 예방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도 도덕적 해이의 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보험회사가 보험 가입자의 행동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험회사가 가입자의 일거일동을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사고 예방 노력을 하지 않은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가입자는 스스로 사고 에방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현실에서 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는 보험에 의해 피해 보상이 완벽할 때 특히 심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재가 나도 모든 피해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다면 구태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 뻔한데요. 공연히 돈을 들여가며 화재경보기를 설치할 필요도 없거니와 신경을 써서 가스불이 잘 꺼졌다 확인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험회사 측에서는 사고가 났을 때 피해액을 전부 보상해 주는 보험의 제공을 꺼리게 될 것입니다. 가입자가 피해의 일부를 부담해야만 도덕적 해이를 어느 정도로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고 피해액 중 처음 얼마는 가입자의 부담으로 하고 나머지만을 보상해 주는 기초공제 제도를 만들어 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고 피해액의 일정 비율을 가입자가 부담하고 나머지만을 보상해 주는 공동보험 제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험회사는 손해를 완전하게 보상해 주는 보험 상품을 제공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험시장에서의 도덕적 해이 사례를 보험 사기를 통해서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보험 가입자는 사고 예방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오히려 보험자를 기망하여 보험금을 추구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은데요. 최근 보험 사기로 떠들썩했던 이슈들을 보면 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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